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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러시아 연해주에서 본 독립운동가들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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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러시아 연해주에서 본 독립운동가들의 흔적
  • 미디어몽구(김정환)
  • 승인 2020.08.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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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 선생 유허비, 최재형 선생 생가,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기념비

찾아갔던 곳 모두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쓸쓸히 홀로 세워져 있어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1. 이상설 선생 유허비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을 기리는 비. 1907년 고종의 밀지를 받고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어 일본의 침략 행위를 전 세계에 알리려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다. 연해주에서 지속적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순국했다.

유언을 들으니 마음이 먹먹했다.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 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뒤 제사도 지내지 말라"

 

2.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의 생가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최재형. 함경도 출신의 자수성가한 재력가였던 그는 군수업을 통해 모은 돈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항일 의식 고취를 위한 신문을 창간하였고, 항일 의병 단체인 동의회를 결성하여 총재직을 맡기도 했다.

이외에도 1909년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후원, 1917년 전로한족중앙총회의 명예 회장에 추대, 1919년 3월 국내외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 그해 4월에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재정장관으로 추대 되는 등 가히 독립운동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1920년 4월 참변으로 희생되기 전까지 최재형이 거주하던 곳. 우수리스크 내에 두 곳이 있다.

 

3. 안중근 단지동맹기념비

민족 원흉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위해 안중근은 김기룡, 백규삼등 11명의 동지들과 왼손 약지를 끊고 손가락에서 흘러 내린 피로 대한독립이라는 글자 넉 자를 태극기에 썼다. 진공 작전 실패에 대한 반성으로 결성한 단지 동맹은 이토 히로부미 처단이라는 민족사의 대사건으로 이어졌다.

안중근의 의사와 동지들의 서릿발 같은 민족의식을 기리는 단지동맹기념비는 높이 4미터 폭 1미터 정도의 큰 비석과 높이와 폭이 각각 1미터인 작은 비석으로 나뉜다. 검은색의 높다란 비석은 두려움 없이 일제에 맞섰던 독립운동가들의 결기를 품은 듯 하늘 향해 당당히 치솟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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