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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프레스센터 기자클럽에서 독립기념관이 3.1절을 기념해 지난 2월초 우리나라의 상징인 최초의 국기(태극기) 원형을 영국국립문서보관서에서 확인 발굴, 공개했습니다.

그동안 국기의 원형과 관련해서 여러 논란이 있어 왔는데요. 이번에 독립기념관에서 최초 국기원형이 공개 됨으로써 국기 원형을 둘러싼 논란이 결말을 맺게 됐고 또한 국기에 대한 정확한 유래와 자부심을 갖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 선생님 일본으로 가는 선상에서 제작한 바로 그 태극기 원형을 그대로 그린것으로 1882년 11월 1일 당시 일본 외무성 외무대보(차관) 요시다 기요나리가 주일 영국공사에게 보낸 문서에 첨부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김삼웅 독립기념관 관장이 밝혔습니다.

이번 국기 원형은 현재 태극기와 같이 중앙에는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으로 색칠을 하고 네 모서리에는 건,곤,감,이의 사쾌를 그렸으며 원형의 원래 크기는 142.41cm, 세로 115.14cm , 태극기의 지름 81.81cm 입니다.

이번 국기 원형 발굴의 경위에 대해 독립기념관측은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한철호 교수가 태극기를 연구 조사하는 과정에서 영국국립문서보관소에 있음을 확인하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연구소와 공동으로 발굴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독립기념관은 3.1절을 맞이해 이번에 발굴한 최초 국기 원형과 다른 역사 태극기들을 대형으로 제작하여 3.1운동 계승 재현 행사에서 일반에 공개 한다고 하네요.


다음은 독립기념관에서 나눠준 자료인데요. 이 국기가 왜 최초의 국기인지에 대한 증거를 그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첫째, 태극기와 함께 동봉된 문서의 작성일 1882년 11월 1일자로 적혀있다. 이날은수신사 박영효가 일본 도쿄에 체류하고 있던 기간과 일치한다. 박영효의 '사화기략'에 의하면 그는 10월 13일 도쿄에 도착한뒤 12월 27일 도쿄를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박영효는 9월 25일 영국인 제임스 선장의 자문을 구해 '태극 4쾌 도안'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기로 결정하고 10월 3일 이 사실을 정부에 보고 하였다. 이후 그는 도쿄에 체류하는 동안 각종 행사에 참석하면서 이 국기를 내걸었다.

둘째, 태극기와 함께 동봉된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요시다 외무대보가 "몇일전 귀하[해리 파크스]의 구두 요청에 따라 조선의 국기 사본을 동봉"한다고 밝히고 있다. 박영효가 10월 3일 국기 제정을 정부에 보고하는 서한에서 "영국,미국,일본,독일의 여러 나라가 모두 그려 가기를 청하니, 이것은 천하에 알려 밝히는 데에 관련된것"이라고 기록했던 사실로 미루어, 방문 당사국인 일본 외무성이 박영효가 제작한 태극기 2본 (대,중)가운데 하나를 그려 놓았고, 이를 다시 파크스의 요청으로 사본을 만들어 보내준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된다.

셋째,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태극기가 박영효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박영효는 9월 25일에 "새로만든 국기를 묵고 있는 누각에 달았다. 기는 흰 바탕으로 네모...중앙에는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으로 색칠을 하고 네 모서리에는 건.곤.감.이.의 사쾌를 그렸다"든가, 또 10월 3일 보고서에서도 국기 제정을 의논했던 제임스 선장이 "태극.팔쾌의 형식은 특별히 뛰어나 눈에 띄이지만, 팔쾌의 분포가 자못 조잡하여 명백하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되며, 또 각국이 이를 모방하여 만드는 데 있어서도 매우 불편하니, 다만 사쾌만 사용하여 네 모서리에 긋는다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고 말한 사실을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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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8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08.02.28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부산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 혼자서 대충 만든 국기에 자부심이 생길껀더기가 없을듯 한데요^^;;;

    이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국기를 아무 생각 없이 만든 나라도 없을듯..

    • 축악플예상 2008.02.28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태극기는 각 나라 국기들 중에 유래가 없을정도로 뜻과 형태가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대충 만들었다니요..

    • 2008.02.29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 우리나라에서 통통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면 부산에서 5시간이면 충분히 가고도 남습니다.

      즉 태극기가 5시간 안에 만들어졌다는거죠.
      뭐 바람의 힘으로 간다고 해도 10시간 이내겠죠^^;

      그것도 토론이나 국민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혼자서 생각이 나는데로 만든것이죠^^
      그리고 일본에서 사용 나서 복귀하고 사후 제가를
      받은 것입니다.^^

      의미는 만들고 나서 갖다 붙히면 됩니다.

    • 2008.03.01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무엇을 말할때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셔야지 어디서 줏어 들은 걸로 말하시면 안되요;;

    • 2008.03.01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까지 우리 나라 국기인 태극기는 박영효가 창안, 도안한 것이 정설로 돼 있었다. 1882년 고종의 허락을 받아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하러 가던 중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일행과 숙의해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태극기의 유래는 잘못 알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박영효가 주도한 작품이 아니라 고종의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새삼 밝혀졌기 때문이다. 1882년 10월 2일자 일본 도쿄에서 발행된 일간신문 「시사신보」(1882년 3월 창간,1936년 폐간) 는 당시 일본을 방문한 박영효 수신사 일행과 기자 회견을 갖고, 태극기는 자국의 국기를 모방하라는 청나라의 압력을 뿌리치고 고종이 직접 도안을 하고 색깔까지 지정한 것으로 보도했다.





      박영효는 고종이 구상한 작품을 고종의 지시에 따라 일본으로 가던
      도중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시사신보 기사는 생생하게 전하고 있어 태극기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사실은 최초의 태극기가 게재된 시사신보 축쇄판을 동경도립중앙도서관에서 단독 입수, 지난 광복절날 일간신문(동아, 한
      국일보)을 통해 태극기 그림을 공개한 서울시청 총무과 송명호씨에 의해 밝혀졌다

  3. gjrtm 2008.02.29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우리나라 국기를 영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확인 발굴 공개 해야만 하는지 좀 안타깝네요
    저것도 안 태워먹도록 잘 관리해야 할듯 합니다.
    잘 보존하려고 영국에 부탁한건가? ㅠㅠ

  4. 비바리 2008.03.01 0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앙~~
    귀연 몽구님 트랙백 하나는 지워주세요
    자다가 깨어 앉았더니 제가 그만 실수를~~
    죄송요`~

  5. 비바리 2008.03.01 0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미있는 기사 잘 보았습니다.
    촬영하신다고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