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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유례없을 정도로 말이 공허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중략) 말이 현실을 더 잘 꿰뚫으면 꿰뚫을수록 냉소와 절망만이 더 깊어진다는 점이다. 이때의 절망은 말이 아무리 현실을 간파해내더라도 말이 말뿐이라는 것에서 온다.(중략) 말이 그저 말을 뿐이라는 게 간파된 것이다. 

말은 그것이 이행되었을 때엔 점검이 뒤따라야 하고 혹은 이행되지 않았을 때엔 사과가 '이행'되어야 한다. (중략)지금의 냉소와 절망은 아무것도 이행되지 않는 사회가 됨으로써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결과일 수 있다. 

(<단속사회(엄기호, 창비)> 23~25 페이지 프롤로그 중에서)


<단속사회>의 저자 엄기호씨를 지난 4월 11일 불타는 금요일 밤, 그것도 홍대입구 근처의 카톨릭 청년회관에서 있었던 강연회에서 만났습니다. 말로 가득한 시대, 말이 무의미한 시대에서 우리는 아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질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강연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요약정리하여 올립니다. 



"한병철 선생님이 쓰신 <피로사회>를 보면 '각 시대에는 그 시대 고유의 질병이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 말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연구자 뿐만 아니라 우리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이전 시대와는 다르다는 당혹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각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면 시대 고유의 감정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지배적 감정은 '억울함' 인 것 같습니다.

<단속사회>는 이 시대의 지배적인 말하기 방법은 무엇인가에 관한 책입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말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고, 그 결과로 사회적 존재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사회적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말하는가?

제가 인권단체에서 일하던 때의 경험입니다. (인권 문제에서) 피해자가 말을 할 수 있는가는 정말 중요한데, 정말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말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피해자는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조목조목 말을 할 수 없고, 소리만 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는 본인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 매우 이야기를 잘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징징거리는 어투로요. 

누구나 고통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시대가 되면서 어떤 고통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수면에 드러나지 않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나중에 알려지면, 사람들은 진작에 말을 하지, 왜 말을 하지 않았냐고 피해자를 오히려 탓하기도 합니다. 최근 세모녀 관련해서도 그런 반응들이 있었죠.

그렇다면 말하지 않은 고통, 또는 말을 했더라도 이렇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고통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동사무소에 가서 국가가 원하는 형식의 언어로 말을 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라 아닌 말을 알아듣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의바른 단속사회

우리는 흔히 매우 안 괜찮아 보이는 친구들을 보면 괜찮냐고 물어봅니다. 내가 정말 안 괜찮을 때 친구들이 괜찮냐고 물어보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보통 괜찮다고 하죠? (괜찮냐고 물어 봤을 때 안 괜찮다고 하면서 문제점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괜찮다고밖에 말 할 수 없는 사람보다는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물어보는 사람도 이미 괜찮다는 대답을 이미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의바름"입니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예의바르게 '단속'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관계는 끊어지고) 우리 사회는 ‘망한’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단속'은 사회의 속성이 아닙니다. 사회가 망했기 때문에 생긴 생존전략입니다.


편은 네가 옳다 하는 사람, 곁은 들어주는 사람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낯설고 두려운 타자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타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죠. 그러기 위해선 참조그룹(reference group)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지금은 개인도 없고, 사회도 없습니다. 집단(학연, 지연 등)만 있을 뿐입니다. 

SNS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기는 나쁩니다. 차이를 듣고 보기엔 조금 나쁘죠. 왜냐하면 (SNS는 현재에 집중된 미디어라서) 같은 것, 좋은 것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차이나 나쁨, 또는 낯선 것과 교류를 하기 위해선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SNS에선 나와 다르거나 낯선 존재를 차단하기도 너무나 쉽습니다. (낯설고 다른 것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나이 든 어떤 분에게 자식들에게 돈과 아파트 말고 물려줄, 자신의 삶으로부터 길어온 교훈이 있느냐고 물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분이 용기있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젋은 그룹에게 다시 물었다. 돈이나 빚 말고 부모나 주변 어른에게서 배운 교훈이 있느냐고 말이다. 한 청년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이 장면은 한국이 왜 망한 사회인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준 사례였다. (<단속사회> 22페이지 프롤로그 중에서)

국가는 권력의 공간, 시장은 교환의 공간(영역)이라고 한다면 사회는 교류의 공간(영역)입니다. 교류라는 것은 상호호혜적이며 지속적이어야 하고, 이런 관계 속에서 우리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정에서 가장 의미깊은 선물은 무엇일까요? 돈? 시간?  '조언과 충고'입니다. 조언과 충고는 자신의 삶을 주는 것이며 받는 이에게 유용한 것이어야 합니다."




힐링과 멘토와 실용과 감정이 넘쳐나는 시대, 저는 <단속사회>를 통해 저 자신과 저를 둘러싼 사회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책에서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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