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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에서 살아가는 세아이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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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에서 살아가는 세아이와 엄마
  • 미디어몽구
  • 승인 2009.05.21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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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게 더 큰 세상을 볼수 있도록 도움 주신 하트-하트재단과, 부족하고 어설픈 영상편집을 하는데 큰 힘이 되어준 최수종님께 감사 드립니다.

지난 월초 하트-하트재단의 선생님 한분과 태국과 버마의 국경도시인 메솟에 다녀왔습니다. 약 일주일 넘게 메솟과 그 주변에서 생활하고 있는 버마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제가 보고 느낀 버마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삶을 매주 한편씩 이곳에 올릴까 합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 부탁 드립니다.



“프리프리”,“버마버마”

2년전 버마 대사관 앞에서 매일 같이 모국을 향해 자유를 갈망하며 울부짖던 버마 이주 노동자들의 한 맺힌 외침을 기억한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에게 현 독재 정권의 무차별적인 유혈탄압이 자행되고 있음을 뉴스를 통해 접하면서, 이 사태가 하루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 지구촌 한 식구로 생각하지도 받아 들이지도 못했다.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토록 자유를 외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지 관심 밖 남의 일로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 버마 대사관 앞에서는 버마인들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내 자신이 내 주변 사람이 처한 상황이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나던 무심해져 버리는 현실 앞에 버마인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직접 보며 민주화와 정치적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느끼고 되새겨 보는 시간을 최근 가졌다.

지난 월초 하트-하트재단의 선생님 한분과 함께 버마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처음 버마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 이 아이들에게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가가야 하는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만남의 설레임보다는 준비되지 않은 걱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겐 숙연하고도 고마운 만남이었다. 아이들과 만남 내내 가슴 아팠고 그 만남 속에서 교만과 이기주의에 찌들어져 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의 20~0년전 역사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곳, 여행으로는 가보지 못할 그곳에서 절망의 그림자와 희망의 불빛도 동시에 보았다.

메솟은 태국 북부에 위치한 국경도시이다. 강을 하나 두고 태국과 버마로 나뉘는데, 많은 버마 아이들이 강을 건너 이곳으로 넘어 온다고 한다. 자유와 희망을 찾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그들. 내 나라를 떠나 남의 나라에 들어와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살아가는 모습을 메솟에 도착한 다음날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도시에서 나오는 온갖 쓰레기들을 한곳에 갖다 버리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6년째 살고 있다는 세 아이와 엄마를 만난 것이다. 세상에나...눈으로는 크기를 가늠할 수 조차 없는 쓰레기 매립장 위에서 나뭇잎으로 지붕을 만들고 널판지로 벽을 만든 겨우 한 두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 곳곳에서 버마 아이들은 생활하고 있었다.

몇달씩 비가 내리는 우기때면 쓰레기 냄새가 중독 가스가 되어 위험할텐데... 이 냄새를 공기 삼아 생활 할 수 있을까...숨 차오를 정도로 턱턱 막히는 메솟의 공기만큼 내 가슴도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과 만나는 몇 시간동안 마음에 희망을 품어주고 돌아설 수 있을지, 아이와 엄마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것이며,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느끼는 상상 속 측은함 만을 간직해야 한다는게 인간적으로 할짓이 못 되는구나 싶었다.

4년간 취재 활동 하면서 어떤 현장에서든 감정 없는 카메라와 함께 냉철한 눈과 가슴으로 촬영에 임해왔는데 이 순간만큼은 내 눈과 가슴에서도 지금껏 느끼지 못한 뭔가가 울컥 거리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고난과 슬픔의 무게를 느껴서일까 이들을 촬영하는 내내 무심한 하늘만 쳐다보며 원망하고, 깊이 빠져드는 슬픈 감정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당장의 배고픔보다 더 걱정되는게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의 질병 위험이었다. 열악이라는 단어조차 의미 없어 보이는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질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엄마는 근처 학교에 의료자원봉사들이 오면 예방 주사와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엄마와 얘기하는 동안 막내 아이는 엄마에게 배고픈 투정을 부렸다. 몇일을 씻지 못했는지 묵은때가 온 몸을 까맣게 덧칠해 놓았고, 파리떼들의 윙윙 거리는 소리는 아이의 투정 소리와 함께 커져만 갔다. 하지만 엄마는 달래주는거 이외엔 아무것도 해 줄수가 없다. 함께 온 선생님이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까지 모여 들기 시작했다. 두 세개씩 받아 먹는 사탕으로나마 세상에 단맛을 느꼈기를...

세 아이와 함께 이곳에서 생활한지 6년째가 되어 간다고 하는 엄마.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을 뿐더러, 불법 체류 신분이라 쉽게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태국 군인이나 경찰에게 잡히기라도 한다면 다시 버마로 추방되게 되는데, 모국에 돌아가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이곳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했다.

엄마에게 소원을 물었다. 배고픔 해결과 생활의 안정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당장의 현실보다는 앞날의 희망을 더 기대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 하길 원했다. 배움을 통해 아이들이 두번 다시 가난의 고통을 겪지 않고 훗날 아이의 자식들에게도 되물림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의 진심이 담긴 소원이었다.

자유와 희망을 찾아 잠시 떠나온 남의 나라 땅 위에서 만난 버마 아이들의 첫 모습은 이렇게 내 가슴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엄마와 헤어지기 전 이 말을 건넸다.

"우리 국민 모두가 누구보다 더 버마 민주화 운동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어본 일이기에, 지금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쉽게 외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국에 돌아가는 그날까지 용기와 희망 잃지 마시고 힘내세요."

이야기를 듣는 엄마는 고맙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엄마와 짧은 시간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지기 전 찍은 사진.


한쪽만 보이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사방 곳곳이 쓰레기 매립장인 이곳...


나뭇잎으로 지붕을 만들고 널판지로 기둥 삼아 세운 이곳에서 버마 아이들은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생활공간에서... 세 아이가 눈에 보이길래 그곳으로 가봤습니다.


어떻게 이곳에서 6년을 생활할 수 있었을까요...


아이의 배고픈 투정은 계속 되지만...엄마는 달래주는거 이외엔 해줄께 없습니다.


집이 무너질까봐...엄마는 기둥을 붙잡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함께 온 선생님께서 사탕을 꺼내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모여 듭니다.


사탕을 받고 돌아가는 아이들...


세아이와 엄마를 만나고 쓰레기 매립장에서 나오는데, 엄마 뒤를 따르는 버마 아이의 모습...

아랫글을 읽고 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 드리겠습니다. 다음편에서는 <메솟에서 본 한국네티즌의 힘>이란 제목으로 가슴 따뜻한 이야기와 안타까운 소식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올 한해는 Daum 희망모금과 Naver 해피빈, 그리고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도움으로 이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009년에도 이 아이들이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고, 또 다른 난민아동이 학교에 들어 올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사랑과 관심이 계속되길 소망합니다.[ ☎ 02)40-2000(내선 111) 국제협력팀 ]

* 베끌러(Bwe Kl'ar)와 사무토(Hsa Mu Htaw) 명의 아이들
교복(7,000원) + 학용품(18,000원) = 25,000 / 25,000 * 명 = 7,500,000(원)

* 우리은행 1005-801-77552(사단법인 하트-하트재단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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