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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희망을 향해 그녀들의 심장박동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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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희망을 향해 그녀들의 심장박동 소리
  • 미디어몽구
  • 승인 2008.12.03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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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우리사회에서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의 고통과 차별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가족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적 자립을 위해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성장애인들의 삶과 애환.

장애를 안고 있지만 자신들을 사랑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녀들에게 걸림돌이 되는것은 장애와 여성에 대한 편견 이었습니다.여기 다양한 개성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여성들이 있습니다.편견 속에서도 일을 포기할수 없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녀들에게 일은 삶에 대한 열정이며 살아있는 심장이기 때문입니다.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은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화 시키고 끈임없이 도전하는 그녀들을 통해 장애 여성의 에너지와 일에 대한 열정을 보여 드리려 합니다.

장애를 희망으로 바꾸는 여성들,그녀들의 생생한 심장 박동을 느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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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품을 보고 만족 하시는 손님들을 보면 힘이 나요.

남편이 화원을 운영하다가 하반신 마비가 된 후에 제가 운영하게 됐습니다. 배달이 많은 일이라 힘들어도 제 작품을 보고 만족 하시는 손님들을 보면 힘이 나요. 사랑하는 아이들을 제 힘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보람됩니다. 아이들에게서 자기를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때 모든 어려움이 녹아 내려요. 화원을 잘 꾸려서 아이들 자라는데 밑거름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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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은 친절이 손님들께 전해질때 큰 보람을 느껴요.

운전을 하고 있는 동안은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요. 사람 만나는걸 좋아하기도 해서 택시 운전을 하게 됐어요.저는 노약자와 장애인들을 특히 친절하게 모셔요.그럼 정말 좋아 하세요.제 작은 친절이 손님들께 전해 질때 이 일을 하는 보람을 느껴요.대부분 건물에 편의시설이 없어 생리현상 해결이 힘들긴 하지만 택시 운전을 계속 하고 싶어요. 손님들께 항상 친절하고 정감 넘치는 택시 기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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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과 약속했죠.평생 이웃과 나누겠다고요.

생계비 때문에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꽃동네라는 책을 통해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는것을 알았죠. 집이 언덕에 있고,집 앞에 계단이 있어 죽을 끓어 혼자서 전동 휠체어에 옮길 때에는 하상 조마조마 하지만 이 일을 그만 둘수 없는건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 입니다. 이 장사를 시작할때 하나님과 나누겠다고 하나님께 약속 드렸거든요.

1년에 한번씩 독거노인, 장애인들에게 생일 잔치 해 드리고 밥 한끼도 못 드시는 분들께 죽을 무료로 드리고 있어요. 이게 다 일을 하는 보람이죠. 하나님이 건강을 허락하실때까지 평생을 이웃과 나누고 싶고 죽을 팔수 있는 상가를 얻어 이웃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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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이의 거울이잖아요.아이에게 열심히 생활하는 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요.
15년동안 돈을 벌었습니다. 단순 작업이지만 일을해서 돈을 벌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죠. 아이를 키우고 가사를 돌보고 일을 하는것이 쉽진 않지만 아이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엄마는 아이의 거울이잖아요. 열심히 생활하는 제 모습이 분명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될꺼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도 이런 엄마의 모습이 자랑스럽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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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가수가 아니라,노래 잘하는 트로트가수 나용희로 봐 주세요.

가수가 되고 싶어서 가요학원에 등록을 한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5월에는 모래성 사랑 이라는 타이틀곡으로 앨범도 냈어요. 사람들이 저를 가수가 아닌 장애인으로만 볼때 힘들기도 하지만 제 목소리가 장애인 비 장애인 구분없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수 있다는것을 느낄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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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제 즐거움 이에요.제가 시각장애 1급이라면 사람들이 안 믿어요^^

열여덟에 맹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어릴때부터 악기에 재능이 있었고 피아노는 감각으로 치는 악기라 별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었어요.피아노를 연주하면 제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 집니다. 동네 몇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데 피아노를 통해서 아이들을 만나는것도 즐겁습니다. 한마디로 피아노는 제 즐거움이에요. 현재 맹인교회 반주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 맹인교회 연주자로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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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실의에 빠진 아이아빠에게 힘을 주고 남편과 함께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구두 수선방을 차리게 됐어요. 젊은 여성이 이런일을 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살림과 일을 병행 한다는것이 쉽지 않았지만 남편과 같이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울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생겼어요. 서로 다독여 주기도 하면서 부부간의 정이 더 많이 쌓여 가는것 같아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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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힘으로 살기 위해 수선을 시작했어요.힘들지만 최선을 다할꺼에요.

장애가 있지만 남에게만 의지하고 싶지 않아 수선을 배웠습니다. 마흔이 넘으니 체력의 한계를 느껴서 오래 일을 하지는 못합니다.남편이 지체 1급인데다 2년넘게 혈액 투석 중이라 병원에 자주 다니고 남편의 병 간호를 하기 때문에 일을 하는것이 버겁기도 합니다. 그래도 손님들이 제가 수선해 드린 옷을 받고 만족 하시거나 그 손님들이 저희집 단골이 될 때는 일 하는 뿌듯함을 느껴요. 저와 제 남편이 장애인다 보니 일반 옷이 잘 맞지 않아 수선을 해서 입는데 그럼 맞춤옷처럼 제 몸에 꼭 맞아서 수선 기술이 유용해요. 건강이 허락될때까지 수선을 하면서 제 힘으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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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땀이 묻어난 물건을 보면 애틋해요.

제가 8년동안 일을 했다는 것이 기쁩니다. 물론 저도 다른 직장인들과 똑 같아요.월급날이 기다려지고 통장에 조금씩 쌓여가는 돈을 보면 뿌듯하거든요.^^ 제가 일을해서 번돈으로 산 물건은 왠지 모르게 애틋하게 가치가 있어요. 아마 제 땀이 스며든 물건이라서 그런가 봐요.앞으로도 계속 이런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제 힘으로 돈을 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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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떳떳한 엄마가 될래요.

10년동안 이 일을 했어요. 장애 여성이라서 여러가지 일을 못할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세요.하지만 저도 비 장애인과 똑같이 일을하고 아이를 키우고 가사를 돌보죠.물론 그 세가지 역할을 해내는것이 쉽지는 않아요.그래도 아이를 보면 힘든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겨요.제 힘이 되어주는 아이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생활 할껍니다.아이가 아플때 신속하게 움직일 수 없어서 가슴이 아프지만 그건 활동 보조인 제도가 활성화 되면 해결될 수 있을꺼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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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싶어 자매들과 칼국수집을 냈어요.

자매들과 함께 할수 있는 일을 찾다가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어요. 제가 서있을 수 없어서 만두를 전담했죠.만두를 빚을땐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해서 힘들지만 손님들이 제가 만든 만두가 맛있다고 하실땐 정말 기뻐요. 자매들에게 도움이 되어 뿌듯하기도 하구요,손님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칼국수 집으로 꼽혔으면 하는 욕심도 생기고 앞으로 사업도 잘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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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요? 제가 평생 할일이에요.
김화자씨와 함께 무료급식비 마련을 위해서 봉사를 시작했어요.봉사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제 몸은 불편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제 손이 필요한 곳이 많터라구요.보이지 않는곳을 쓸고 닦으며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사는것이 제 평생 해야 할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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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제 꿈을 다시 설계한다는건 정말 가슴 벅찬 일이죠.

유치원 강사를 하는데 장애가 있다고 해서 별 어려움은 없어요.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이는 편입니다.오히려 공모전을 출품할때 이동에 대한 어려움과 비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에 어려움을 느끼죠.그렇지만 장애 여성으로써 경제 활동을 한다는것과 결혼 후에 끊어진 제 꿈을 다시 설계 한다는건 정말 가슴 벅찬 일이에요.앞으로 개인 전시도 하고 싶고 화가가 되고 싶습니다.그 꿈에 한발짝씩 다가서기 위해 하루하루 날마다 그림을 그려요.힘은 들지만 힘든만큼 값어치가 있고 보람도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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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된다면 장애인들의 권익을 대변할수 있는 여성이 되고 싶어요.

제 작품을 인정 받아 98년도에 구족화가 협회에 들어가게 됐어요.제 열정을 인정 받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많은분들이 제 작품을 보고 즐거워 하실때 상을 받을때 화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앞으로 더 공부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거나 사회복지 분야에서 장애인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여성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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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인정받는 장이가 되고 싶어요.
미니 장승 공예가 채용병 선생님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시작하게 됐어요,행사나 전시를 하는데 장애여성인 저희 작품이라 하면 사람들이 잘 믿지 않고 하청을 받으려 해도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그래도 한국의 멋을 잇는다는 생각이 그런 편견과 차별에 대한 어려움을 누그러지게 합니다.가끔 병원에 무료 전시를 하는데 환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거나 신세대들이 신기해 할때 신세대에게 한국의 멋을 알린다는 뿌듯함이 큽니다.미니장승을 한국의 문화 상품으로 세계에 알려서 세계에서 인정받는 장이가 되는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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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 하고 싶다는 제 열정과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을 이길 수는 없어요.
한상수 선생님을 만나 자수공예를 시작해서 96년부터 공모전 출품을 했어요.공모전 출품할때 작품을 가지고 이동하는 것과 공모전 출품에서 판매 연결까지가 힘들어서 생활이 고됩니다.그래도 제가 이 일을 계속 하는건 제가 이 전통자수를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전통의 역을 잇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에요.잊혀져가는 전통이지만 이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자나 후배를 양성하는것이 앞으로 제가 할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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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이 제 재산이에요.볼링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동호회를 통해 볼링을 접하게 되었고 운동을 하면서 예전에 꿈도 꾸지 못했던 뭐든지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볼링을 계기로 배드민턴,수영등 다른 운동에도 도전할수 있었습니다.장애인이라고 그저 주저앉아 있었다면 그저 집안에 틀어 박혀서 살았을 껍니다.이왕 시작한 운동이기에 각종 대회에도 나가고 싶고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장애 여성들과 함께 할수 있는 운동 프로그램들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러나 비장애인 특성에 밎춰진 경기장 구조나 운동용품 가격,경기장 이용료,이동의 어려움 등으로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장애 여성들이 많습니다.장애 여성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가 힘써 줬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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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누리고 있는 축복은 저보다 어려운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과 같아요.

교통사고로 저희부부 모두 장애를 갖게 되었어요.장애를 겪은 뒤에도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했죠.장애 때문에 아이들에게 못해주는 부분들이 가슴 아팠어요.아이들은 자기공부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장학생으로 다녔어요.아이들이 잘 자라준건 축복이죠.이런 축복은 저보다 더 힘든 장애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과 같아요.여건이 된다면 사회에 평생 봉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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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 1급 남편을 돌보고,시부모님을 모시고,농사를 지으며 종가집 며느리로서 일년에 제사 18번도 지냈어요.

남편이 지체1급 장애인이에요.남편을 돌 보면서 30년동안 시부모님을 모셨고 집안일도 했습니다.또 시댁이 종가집이라 농사도 많았고 제사도 많을때는 1년에 18번을 지내야 했어요.그렇지만 장애를 가진 제가 했어요.^^밭농사는 쉽진 않지만 그만큼 뿌듯해요.파종을 하고 뜨거운 여름을 보낸 후 가을에 수확 할때는 모든 어려움을 잊어요.파종과 수확하는 과정은 제 자식을 키우는것과 같거든요.전 제가 할수 있는 날까지 열심히 밭일을 할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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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를 통해 문화 인재를 키우는것이 제 몫이죠.

저는 원래 발레리나 지망생이었어요.93년도에 강사로 일하던 학원 건물에서 떨어져 실족하는 사고를 당했죠.사고후 공부도 하고 여러가지 자격증도 땄지만 발레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어 발레를 통해 할수 있는 일을 생각 했어요.그 일이 바로 발레를 하고 싶은 아이들과 발레를 공유하는 것이었어요.단장인 제가 장애를 가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경우에 힘들기도 하지만,제게 배운 아이들이 서로를 위해주고 정감있는 성인으로 자라나는것을 지켜보는것이 에너지와 힘의 원천이 됩니다.앞으로 발레를 통해 세계와 문화적 교류를 하면서 어린이 문화를 육성하고 발전 시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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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통해 세계 여성들과 교류하고 싶어요.

재활로 수영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제 삶이 되어 버렸어요.4년전 여성이라는 이유로 실력이 있는데도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이 좌절된적이 있었습니다.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어제의 노력이 오늘의 저를 만든거죠.이번 장애인 전국대회에서 서울시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고 아태 장애인 경기대회에도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게 되었어요.일본 장애여성 선수들과 대한해협을 횡단하고 싶은 바람도 있고 수영을 통해 세계 장애 여성들과 교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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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계적인 장애여성 양궁 선수라는 것이 보람이죠.

수술후에 재활목적으로 양궁을 하게 됐어요.주부,엄마,양궁선수, 이 세가지 역을 하기에는 버겁고 장애인이라 소속단체도 없어서 힘들지만 손에서 놓을수가 없어요.양궁을 통해 제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양궁을 통해 제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 헤쳐 나갈 수 있으니까요.이번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기록을 갱신하고 금메달을 따고싶습니다.끈임없이 도전할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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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제게 또 다른 무용입니다.그림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요.

어릴때부터 무용을 하며 살아 왔어요.대학시절은 춤에 대해 예정과 나름데로 철학을 가질수 있었고 저에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대학교 4학년 진로문제로 복잡했던 시기에 사고로 경추를 다쳐서 무용을 할수 없게 됐어요.2년동안 방황하다가 재활을 위해 시작한 그림에 점점 빠져드는 나를 발견했어요.그림 그리는 순간만은 무용을 했을때처럼 제 안의 모든것을 표현할 수 있었고 모든 잡생각을 잊을 수 있었어요.그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사회활동을 하면서 지금의 제 남편과 만났어요.결혼하고,아이를 갖고,엄마가 되고..이 모든 기쁨이 그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죠.앞으로도 그림을 그리면서 작은것에 감사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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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요? 몸이 불편해도 마음은 즐거워요.

제가 가르친 학생들이 컴퓨터 자격증을 따 오거나 컴퓨터를 키고 끄는 것도 모르시던 분이 문서를 작성할때 정말 보람을 느끼죠.저도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제 장애 때문에 주눅이 들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나도 할수 있다는 자신감과 무슨 일이든 내가 할일이 있을꺼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컴퓨터를 배우고 싶어하는 중증 장애인은 갈수록 늘어 나는데 내년에 이 일이 끝나게 되어서 정말 아쉬워요. 그래서 복지관이 완공되면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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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이라 안된다고요? 장애여성이라서 더 악착같이 일해요.

장애 여성인 저도 전문적인 일을 가지고 싶었어요.자동차 영업이 실적 위주라 스트레스가 많지만 그래도 매력있는 직업이죠.저와 함께 입사한 주부사원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 둘때도 '장애 여성이라 못 견딜 줄 알았어'라는 소릴 듣기 싫어 악착같이 견더 냈어요.판매 실적을 올리고 목표량을 달성 했을때는 정말 일하는 보람을 느껴요.사람들에게 장애 여성도 일을 잘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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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 하면서 번돈으로 하고 싶은것이 많아요.무료 급식비도 내고 멋진여성 회원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장애인 무료급식비 마련을 위해 의류판매에 뛰어 들었어요.현재 수입의 3분의1은 무료 급식비로 써요.노점이지만 일을 할수 있다는 자체가 보람되고 이 일을 통해서 봉사를 할수 있다는게 뿌듯합니다.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서 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 회원중 최저 생계비 수급자에 한해 아이들 장학금이나 의료 보조금도 지원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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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 수급자여서 도움을 받지만 언젠가는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아이들도 그걸 알고 있어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수 있다는 것과 아이들이 착하게 잘 자라준것이 정말 뿌듯합니다.아이들이 부모의 장애에 거부감 없고 오히려 어려운데 자기들을 낳고 기르는걸 자랑스럽게 여겨요.지금은 기초생활 수급자여서 도움을 받지만 언젠가는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아이들도 부모의 뜻을 알고 봉사를 실천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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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상담 치료사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즐겁고 일 자체가 제겐 보람이에요.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땐 피곤 하지만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는 뿌듯함에 즐거워요.우리나라는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그 편견과 부딪혀야 하는것이 힘들지만 항상 밝은 생각으로 일해요.열심히 일하고 배우면서 장애아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상담 치료사가 되고 싶어요.

장애와 차별을 딛고 내일을 여는 멋진 여성분들의 삶의 애환과 소박한 소망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그녀들은 말합니다.그녀들이 극복할 것은 자신의 장애가 아니라 사회가 주는 장애라고...그녀들은 말합니다.일이 나에게 주는것은 생명이라고...자신있게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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