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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촛불집회 바라보는 이길준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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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촛불집회 바라보는 이길준 이경
  • 미디어몽구
  • 승인 2008.07.29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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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마음으로 현장을 찾아갔다. '몽구'와 '박형준', 우리가 찾아간 현장은 신월동 성당이다. 신월동 성당에는 '촛불진압'에 대한 양심선언과 함께 부대 복귀를 거부한 이길준 이경이 있다. 그를 격려하고 지켜주기 위해 촛불을 들고 찾아온 시민들, 그리고 밤잠을 성당에서 해결하기까지 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길준 이경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인생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일지도 모른다. 올해 26세된 '박형준'으로서는, 불과 1살 어린 이길준 이경의 그런 엄청난 결정을 바라보는 심정이 특히나 남달랐다. 친구이자 1살 어린 동생이 그런 엄청난 결정을 하기까지, 어떤 심정이었을지, 그리고 과연 본인이라면 가능했을지, 마음이 특히나 더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은, 이길준 이경의 인터뷰를 시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27일에 있었던 기자회견에 이어 너무 많은 인터뷰 요청이 난무해, 관계자들은 그에 대한 인터뷰 자제를 요청했다. 게다가, 이길준 이경의 부모님은 여전히 이길준 이경의 선택을 마뜩치 않게 여기시는 것 같았다. 예의상 인터뷰를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현장을 사실적으로 담는 것으로 대신하려 노력했다.

'다인아빠'의 삼계탕과 함께 한 '촛불'

1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저녁 무렵의 신월동 성당을 찾아왔다. 바깥에서는 사복 경찰이 끊임없이 성당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고, 자그마한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사복 형사 수명이 찾아와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상당수의 시민들은 그들의 '진입'을 걱정했다. 밤샘을 선택한 시민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밤샘을 선택한 것이다.

이길준 이경을 지키겠다는 움직임은 지식인들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28일의 신월동 신당 지하강당에서는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21세기 세계정치경제와 이명박 정부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면서 움직임에 동참했고, 그 이후에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와 오슬로국립대 박노자 교수의 강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현장에는 '다인아빠'의 용달차도 찾아와 시민들에게 삼계탕을 제공했다. '다인아빠'가 찾아간 현장은 대개 뜻깊은 현장이었다. 그의 용달차가 찾아온다는 자체가 현장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그 의미를 전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이길준 이경의 인터뷰는 진행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시민들, 그리고 의미있는 참석자의 목소리를 음미해보자.

[5년 전 이곳의 주인공 '강철민'] 5년 전의 그는 '강철민 이병'이었다.

-강철민씨에게 있어, 이길준 이경은 '후배'인 것 같다. 5년 전, '이라크전 파병'에 반대해 바로 이곳에서 양심선언과 농성에 나선 당사자로서 '후배'를 바라보눈 기분이 남다를 듯하다. '후배'에게 조언을 남긴다면?

"일단, 부모님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잠시동안일지라도 마음 고생도 심할 것이다. 어쩌면 무거운 짐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지금 이 순간은 앞으로의 삶의 원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아까 '무거운 짐'이라고 한 이유는, 어쩌면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5년 전의 '양심선언' 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 그 이후의 심정은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어쩌면 이길준 이경도 그 길을 그대로 걸을 가능성이 있기에 물어보는 것이다.

"아까 이야기했듯이 잠시 마음 고생이 심할 것이라는 점 외엔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그 이후의 심정, 내 개인적으로는 후회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살아가는데에 힘이 됐다. 살면서 어려운 순간을 늘 맞이하게 될텐데, 오늘의 이 순간을 계기로 앞으로 어떤 어려운 순간을 맞이하게 돼더라도 극복 가능하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더 큰 후회를 했을 것 같다."

-요즘 '촛불'이 화두이다 보니 묻는다. 강철민씨도 '촛불'을 든 적이 있나.

"든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자주 참석한다. 내가 대구에 사는데 서울에 올라와서도 몇번 이상 참석했을 정도다. 아무래도 내가 민주노동당원이다 보니 더욱 당원 모임 등에도 참석하고 같이 행동하면서 더욱 열심히 행동하는 것 같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소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양심선언'의 당사자로서 '양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한참 생각하면서)옳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본다."

[72세 촛불시민 이모씨] "끝까지 버티며 이루고 싶은 것은 확실히 이루기를…."

-이길준 이경이 손자뻘일 듯한데, 이 손자뻘되는 청년을 어떻게 바라보셨나.

"똑똑한 청년이다. 지켜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도 똑부러지게 하더라. 더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오히려 할말이 많을텐데도 못하는 아이들이 바보처럼 보인다."

-'촛불'을 들러 시위에 나서신 적은 있나.

"당연하다. 매일 나선다."

-매일 나선다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세간의 인식은 '노인은 한나라당을 많이 지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듯 매일 촛불을 드시는 이유는 있나.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정부가 하는 행동이 너무 갑갑하다. '낙하산 인사' 등으로 인해 방송조차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래서 집회에 더욱 자주 나서게 된다. '다양한 소식'을 방송에서 듣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집회 현장에서 다양한 소식을 듣고 싶어지더라."

-현 시국에 대한 친구분들의 반응은 어떠신가.

"당 대표가 아침에 말하면 저녁에 대통령이 그것을 부인하는 정권 아닌가. 당최 믿을 수가 없으니 우리같이 나이든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정권은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49세 여성 이모씨] "부모 입장에선 너무 가슴아플 것 같다"

-이길준 이경은 아들 또래일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부모 입장이라면 너무 가슴아프겠지. 이런 사례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지만, 지금 정권에서는 어려운 일 아니겠나. 그래서 더욱 가슴아프다.

혹시 뜻이 같아도 두려워서 선뜻 못나서는 다른 전의경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정치인들의 잘못으로 생기는 일일텐데, 정부와 정치인이 더 많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정부와 정치인만 생각하면 답답하다. 오죽하면 '부시 방한'에 맞춰서, '부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상전'이니까 이명박 대통령을 제쳐두고 누리꾼들이 '부시와 네티즌의 대화'에 나서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조금 직접적으로 질문하겠다. 만약 아들이 있는데 이길준 이경과 같은 선택을 한다면 어떻겠는가?

"내 개인의 입장에서, 내 아들이 그 선택을 한다면, '이명박 정권'이라서 긍정적으로는 못볼 것 같다. 정권의 임기도 아작 한참이나 남았고, 경찰도 법도 특히나 믿을 수 없지 않나. 부모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무서울 것' 같다. 아마도, 이길준 이경의 부모님도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래도 이길준 이경은 그렇게 선택했다. 부모의 마음으로 격려를 한다면?

"어려운 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명박 정권이 지나 새로운 시대가 온다면 남들이 더 우러러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희망도 있다. 분명히 힘들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보다 인정받고 살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살면서 조금은 요령껏 대처하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길준 이경이 거주하는 신월동 성당 지하 요셉관에서는 이길준 이경의 부친도 모습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아들의 선택이 여전히 마뜩치 않았는지 이길준 이경과 함께 하는 관계자들에게 언성을 높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길준 이경의 부모는 끝까지 아들을 만류하려 했다고 한다. 어렵고 위험한 길을 선택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그건 함부로 추측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성당 정문 코앞에는 사복경찰들도 있어

성당 정문을 기점으로 좁은 도로 바로 건너편에는 전의경으로 보이는 짧은 헤어스타일의 젊은 남성들이 2명 단위로 교대하면서 성당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고, 늦은 저녁 무렵부터는 사복형사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을 보며 불안을 느낀 시민들은, 늦은 시간까지 성당을 지켰고 그들 중 일부는 '밤샘'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이길준 이경은 '전의경 제도 폐지'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쉽게 판단하면 된다. 본인 스스로 의경으로 지원했다고 하지만, 막상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을 구타하고 물대포를 쏘는 광경을 지켜보고 그 당사자가 되면서 "양심이 하얗게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길준 이경의 사례를 넘어 조금은 넓게 판단해보자. 특히나 전경의 경우, 국방의 의무를 위해 징집된 청년들이 타의에 의해 강제로 경찰로 편입돼 국방의 의무와는 관계없는 '시민 진압'에 나서는 사례다. 헌법재판소에서 결국 '전의경 제도'에 대해 '합헌' 판정을 내렸다지만, 그 '합헌' 판정은 과연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판정이었을까?

이길준 이경은 여전히 그렇게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 어느때보다 '과잉폭력'으로 일관하는 경찰의 대처 속, 그의 어려운 싸움은 또다른 태양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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