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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화보] 박종철 열사 추모식과 남영동 대공분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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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화보] 박종철 열사 추모식과 남영동 대공분실 모습
  • 미디어몽구
  • 승인 2018.01.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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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전 오늘은 경찰의 물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섰던 박종철 열사의 기일이다. 오전 마석 모란공원열사묘역에선 추모식이 열렸다.

가족과 친구, 선•후배와 이한열 열사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 그리고 이부영 당시 민통련 사무처장 등등 약 200여명이 넘는 추모객들이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열사 묘역.

​영화 <1987> 영향 때문인지 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다. 한 참석자는 지난해 30주기때 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고 했다.

​박종철 열사 친형인 박종부 씨가 분향제례를 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와 인연 있는 분들이 추모식에 함께 하고 있다.

​이부영 당시 민통련 사무처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영등포 교도소에서 복역 중 안유 보안계장을 통해 들은 충격적인 사실을 몰래 빼돌려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의 고문경관이 2명이 아닌 5명이라는 사실과 경찰과 검찰 등이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었다.

​추모객들이 노란조끼를 입고 있는 이유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에게 돌려달라는 내용의 청원 운동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알리고자 함이다.

​박종철 열사의 고등학교 친구인 김상준 씨가 생전의 추억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영화 1987을 친구들과 단체관람 했는데 종철이가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그리곤 종철이의 개구쟁이 같았던 모습이나 새로 산 점퍼를 걸인에게 내어 주던 모습 등은 영화에 담기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박종철 열사의 서울대 언어학과 1년 후배인 이현주 씨가 추도시인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를 낭송하고 있다. 묘 바로 옆에 비석으로도 새겨져 있다.

​참석자 모두가 추모의 노래인 <그날이 오면>을 합창하고 있다. 영화 엔딩장면에서도 나오는 민중가요이다.

​이부영 당시 민통령 사무처장 및 일행이 박종철 열사 묘역 앞에서 큰 절을 올리고 있다.

​한쪽엔 이철성 경찰청장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었다.

​추모식 2부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렸다. 물고문이 이루어졌던 509호실에서 헌화와 박종철 장학금 전달식 등이 진행 되었다.

​남영동 대공분실 전경이다. 지금은 경찰청인권센터로 탈바꿈했다. 좁은 창문이 있는 5층이 조사실인데 이곳에서 물고문으로 죽임을 당했다.

​건물 주변 담벼락 위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 뒷편에 있는 나선형 계단. 박종철 열사는 이 계단 통해 조사실로 올라갔다. 다른 연행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계단을 오르면 방향 감각도 상실하고 차가운 쇠소리로 인해 공포감은 더욱 극대화 된다고 한다.

​조사실이 있는 5층 복도의 모습이다. 박종철 열사가 전기고문과 물고문 당했던 509호실 앞엔 추모객들로 북적인다. 이곳엔 지그재그로 설계된 15개의 조사실이 있는데 복도에서 내부를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스러져간 509호실이다. 맞은편에는 CCTV가 은밀하게 설치되어 모든 조사실의 상황을 2층 과장실에서 모니터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분 한분 들어가 추모했다.

​물고문이 자행되었던 욕조다.

​509호실 출입구엔 국회꽃과 경찰청장의 조화가 놓여 있었다.

​4층엔 박종철기념관이 있다. 박종철 열사의 유품과 80년대 시대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진과 신문자료 등으로 전시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가 아끼던 기타

​건물 앞에 모인 추모객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배우는 학습장이다. 동시에 친일과 독재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친일청산을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줬는지를 알려주는 현대사의 학습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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